1. 트럼프와 바이든, 관세 전쟁에서 같은 편이었다
트럼프와 바이든, 정반대의 인물처럼 보이지만 적어도 대중 무역 정책에 있어서는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트럼프가 집권했던 1기 시절, 그는 중국산 제품에 대해 대대적인 관세 폭탄을 퍼부었습니다. 그런데 정권이 바이든으로 바뀐 뒤, 그 조치가 철회되기는커녕 오히려 강화됐습니다. 트럼프가 설정한 관세 라인 위에, 바이든은 평균 3.8배에 달하는 추가 관세를 얹었습니다.
결국 중국을 견제하는 데 있어 핵심 수단으로 '관세'를 택했다는 점에서는 양측 모두 똑같은 전략을 취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중국의 성장을 완전히 막지 못했다고 판단한 트럼프는 2기 공약으로 기존보다 더 강력한 무역 제재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미국은 정치 성향을 떠나, ‘중국 견제’라는 명분 아래 관세를 중심으로 한 경제 압박을 지속하고 있는 셈입니다.
2. 동맹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 바이든은 연합, 트럼프는 불신
그러나 두 사람의 전략에는 결정적인 차이점도 존재합니다.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누구와 함께하느냐’의 문제에서 그 결이 갈립니다. 바이든은 동맹국과의 공조를 중시합니다. 유럽, 아시아의 주요 국가들과 손잡고 "우리 다 함께 중국 제품을 외면하자"며 연합 전선을 구축하는 데 공을 들였습니다.
반면 트럼프는 동맹국도 믿지 못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바이든이 공조를 외치는 사이, 유럽과 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이 겉으로는 미국에 동조하면서도 뒤에서는 여전히 중국과 교역을 지속했다는 게 트럼프의 시각입니다. 특히 유럽은 중국산 제품의 우회 수출 통로로 활용되었다고 보고 있으며, 이에 따라 트럼프는 동맹국에도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3. 유럽,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 중
유럽 국가들의 입장은 복잡합니다.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중국과 미국 모두 주요 교역 상대국입니다. 어느 한쪽의 눈치만 볼 수 없는 구조죠. 더욱이 미국과는 오랜 안보 협력이 얽혀 있고, 중국과는 점점 더 늘어나는 경제적 연결 고리가 존재합니다.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견제를 위해 유럽의 협조를 구했을 때, 유럽연합은 이를 수용하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바로 약한 고리를 찾아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스페인입니다. 중국은 스페인에 대해 전기차 수입 제한을 철회하라는 압박을 가하며, 만약 그렇지 않으면 스페인의 대표 수출품인 하몽과 와인 등에 대해 보복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결국 스페인은 유럽연합 본부의 공식 입장과 달리, 중국 전기차 공장을 유치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중국은 이렇게 유럽 각국의 이해관계가 상이하다는 점을 이용해 공조 체계를 무너뜨리는 전략을 쓰고 있습니다.
4. 유럽의 방위 공백과 미국의 계산된 후퇴
미국은 그동안 유럽을 향한 핵 우산, 안보 제공을 자국의 전략적 이익과 연계해 유지해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미국의 재정 상황은 악화일로이고, 트럼프는 유럽을 지켜줄 명분도 여력도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이제 유럽은 스스로 방위력을 갖춰야 하는 시대에 들어섰습니다. 유럽 각국이 공동 방위 펀드를 조성하고, 무기 도입을 추진해야 할 상황이 도래한 것입니다. 이때 가장 손쉽고 현실적인 파트너는 기존 무기 호환성이 뛰어난 미국입니다. 트럼프는 이 흐름을 간파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방위 책임을 내려놓고도, 미국 무기 수출을 통해 재정적 이득을 챙기려는 전략이 엿보입니다.
5. 유럽의 산업 구조와 고령 사회가 주는 교훈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은 나름의 방식으로 생존 전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명품 산업이라는 고부가가치 분야를, 독일은 기계·소재·부품 산업을 중심으로 탄탄한 기술력을 기반으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들 산업은 빠른 대응보다는 깊이 있는 숙련도와 오랜 기술 축적이 필요한 분야로, 고령화 사회에 더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반면 스페인, 이탈리아 등은 농업과 축산업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이들은 기술산업 전환에 있어 상대적으로 취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취약성이 중국과의 무역에서 협상 카드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6. 한국이 더 외로운 이유
이 지점에서 우리는 자문하게 됩니다. 위기에 처했을 때 한국은 과연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친구를 가졌는가. 유럽은 여전히 이웃 국가들이 어려울 때 재정적 지원을 하며 십시일반 도와주고 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그리스와 이탈리아를 지원했던 프랑스와 독일의 사례가 그 증거입니다.
하지만 한국은 외교적으로 고립된 상황에 더욱 취약합니다. 미국은 물론 동맹이고, 우방이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깊은 신뢰나 조건 없는 지원을 제공해 줄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습니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미국의 지원은 항상 전략적 판단에 의해 제한적으로 제공된다는 현실을 우리는 목격했습니다.
7. 일본과의 관계, 감정과 전략 사이
일본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정적으로는 앙금이 남아 있지만, 전략적으로는 공조가 필요한 부분이 많습니다. 일본 역시 고령화, 초고령사회, 저출산이라는 공통의 숙제를 안고 있으며, 중국이라는 공동의 위협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어떤 정치 세력은 일본과의 협력을 주장합니다. 반면 또 다른 세력은 일본을 여전히 믿을 수 없는 국가로 간주하며 선을 긋습니다. 누가 옳고 그르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것은 현실적인 대안과 전략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지금의 정치 담론은 아쉽게도 그런 부분이 부족합니다.
8. 미중 갈등의 시대,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
결국 이 모든 이야기는 미중 갈등이라는 거대한 축에서 출발합니다. 미국과 중국 모두 자국 내수 보호에 주력하면서, 수출 중심의 외부 기업들은 설 자리를 점점 잃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은 수출에 의존하는 경제 구조를 재정비해야 할 시점에 놓여 있습니다.
지금처럼 빠르게 대응하고 순발력으로 버텨온 산업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한국은 이제 장년층에게 적합한 산업 생태계, 느리지만 깊이 있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산업 기반을 고민해야 합니다. 유럽의 사례는 그래서 우리에게 더없이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됩니다.
9. 외교도, 경제도, 산업도 ‘혼자 살아남는 법’을 고민해야 할 때
이제는 외교도, 경제도, 산업도 모두 자력 생존이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점점 격화되고, 유럽은 이 사이에서 생존 전략을 짜내고 있습니다. 한국은 그 어느 편에도 안심하고 기대기 어려운 처지에 있습니다. 외교적 고립을 피하려면 냉철한 전략과 실용주의적 접근이 절실하며, 산업 구조도 속도보다 깊이, 수출보다 내수, 청년 중심에서 장년 중심 산업으로 일부 전환이 필요합니다.
국제 질서는 바뀌고 있습니다. 과거처럼 어느 한편에 줄을 대고 따라가기만 해서는 더 이상 생존하기 어렵습니다. '누가 우리를 도와줄 것인가'라는 질문에 앞서, '우리가 무엇을 준비하고 있느냐'를 먼저 물어야 할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