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트럼프 옆자리를 차지한 현대차, 일단 이벤트는 성공
최근 현대자동차가 미국에서 벌인 ‘트럼프 이벤트’는 분명 성공적인 한 수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을 바로 옆에 두고 투자를 발표하는 장면은 단순한 사진 한 장 이상의 상징적 의미를 가집니다. 의심 많은 미국 언론이나 정계로부터 별다른 반론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현대차 입장에서는 성공적인 이벤트를 해낸 셈입니다.
2. 미국 생산 확대에 대한 반대급부
이번 현대차의 투자 계획 핵심은 미국 내 생산량을 대폭 늘리겠다는 것입니다. 현재 약 70만 대를 미국에서 생산 중인데, 이를 120만 대까지 끌어올릴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에 대해 트럼프는 “이제 너는 관세가 없을 것 같아”라며 호응했습니다. 이 말 한마디에 국내 언론들은 ‘현대차, 관세 면제 받았다’며 떠들썩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직접 생산하는 물량에 대해선 당연히 관세가 부과되지 않겠지만, 한국에서 생산해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물량에 대해선 여전히 관세 위협이 존재합니다. 이번 조치는 미국 내 생산을 늘려 관세 대상 물량을 줄이겠다는 전략이지, 전체적으로 관세를 면제받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3. 국내 생산 라인의 위축, 사라지는 차종과 일자리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미국 생산량이 늘어난다는 것은 결국 국내 생산량이 줄어든다는 뜻입니다. 미국 공장에서 만들기로 결정된 차종은 더 이상 한국 공장에서 만들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전기차인 아이오닉 시리즈나 제네시스 일부 모델은 미국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큽니다.
이렇게 되면 국내 공장에서 해당 차종은 사라지고, 이에 따라 관련 부품을 생산하던 1차, 2차, 3차 협력업체들도 같이 타격을 입게 됩니다. 울산을 비롯한 자동차 산업 중심지들의 일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고, 그 여파는 지역경제 전반에 파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현대차는 국내 생산도 줄이지 않겠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는 연구개발 헤드 역할에 국한될 가능성이 큽니다. 현실적으로 일자리 창출에는 큰 의미가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4. GM 등 다른 기업도 따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
현대차의 결정은 자동차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큽니다. 미국의 관세 정책이 강화될 경우, GM 같은 회사도 한국 공장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구조를 유지하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트럼프가 현대차에 관세 면제 신호를 주고, 현대차가 미국 생산을 늘리기로 한 지금, GM이나 포드, 혹은 다른 외국계 기업도 “우리도 미국에서 생산하겠다”는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국내 공장은 자연스럽게 축소되거나 폐쇄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즉, 현대차의 결정이 한국 자동차 산업 전반에 도미노처럼 작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5. 스스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기업들, 그리고 ‘로비 공화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차는 왜 이렇게 신속하게 결단을 내릴 수 있었을까요? 정답은 하나입니다. 정부가 실종됐기 때문입니다. 현 정부가 트럼프와의 무역 이슈에 대해 제대로 된 대응도, 정보도 제공하지 못하는 가운데, 현대차를 비롯한 4대 그룹은 자력 갱생 모드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현대차는 미국 내 수많은 로비스트들을 고용했고, 전직 정치인이나 관료 출신 인물들을 사외이사 또는 임원으로 영입하며 정보 라인을 구축했습니다. 지금 현대차는 역대 최고 수준의 로비 비용을 지출 중입니다. SK, 삼성, LG 등 다른 대기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로비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며, 대기업 정도나 버틸 수 있는 구조가 됐습니다. 그럼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미국 시장에서 벌어지는 변화에 홀로 노출되어야 합니다. 이게 바로 이번 이벤트의 그림자입니다.
6. 현대차의 선택, 박수만 치기엔 이른 이유
정리하자면, 현대차는 분명 전략적인 판단을 잘했고, 트럼프라는 예측불가능한 인물과의 이벤트도 잘 연출했습니다. 그 자체만 보면 박수를 받을 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국내 생산기지의 위축, 일자리 감소, 협력업체들의 생존 위기, 산업구조의 탈한국화라는 심각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현대차의 결정은 산업 전체의 구조적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파급력을 가졌기에, 우리는 단순히 “잘했다”라고만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정부가 제 기능을 못할 때, 기업은 알아서 살아남기 위해 움직입니다. 하지만 그 피해는 결국 국민과 노동자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현대차의 이벤트는 그래서 더 씁쓸합니다. 반짝이는 겉모습 뒤에 숨겨진 구조적 불안이, 우리 모두에게 닥쳐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