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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영화관과 상업용 부동산의 위기

by 하늘오두막 2025. 3. 28.

1. 영화관, 더 이상 '믿을 만한 임차인'이 아니다

예전에는 대형 복합건물에 CGV 같은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들어온다는 말만으로도 건물 분양이 활기를 띠었습니다. 영화관이 입점하면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상가의 매출도 자연스럽게 따라오리라는 기대 때문이었죠. 그래서 건물을 설계할 때부터 영화관을 염두에 두고 공간을 구성하는 일도 흔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정작 건물이 완공되고 나면 약속했던 대형 멀티플렉스 대신 듣도 보도 못한 작은 프랜차이즈 극장이 들어서거나, 아예 극장이 입점하지 않아 수분양자들이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도 많아졌습니다.

2. 영화관이 있어도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

영화관은 단순히 콘텐츠를 소비하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을 머무르게 하고 유동 인구를 모으는 핵심 시설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최근 분위기는 전혀 다릅니다. 서울 이화여대 앞, 한때 젊은이들로 북적이던 거리가 이제는 거의 유령도시 수준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자리가 나빠서”라기보다는, 더 이상 사람들이 그 공간에 머무를 이유가 사라진 겁니다. 영화관이 입점해 있어도 상가는 텅텅 비어 있고, 사무실도 불이 꺼진 채 임차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영화관이 있다고 사람들이 몰려오던 시대는 이미 지나간 것입니다.

3. 대형 영화관, 지금은 구조적 위기 속에 있다

우리나라 대표 멀티플렉스 운영사인 CJ CGV는 한때 주당 10만8천 원에 달했던 주가가 현재는 5천 원 이하로 추락했습니다. 2024년 2월에는 직원 80명이 희망퇴직을 신청했고, 같은 해 3월에는 서울 송파점, 인천 연수점, 창원점, 광주 터미널점 등 주요 지역의 네 개 지점을 폐관했습니다. CGV의 극장 수는 기존 196개에서 192개로 줄었습니다. 메가박스는 5년 연속 적자를 기록 중이고, 롯데시네마 역시 3억 원 수준의 영업이익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습니다.

4. 통계가 말해주는 산업 지형의 변화

2024년 기준 국내 영화·영상 산업 규모는 약 3조3천억 원 수준입니다. 이 중 OTT가 차지하는 비중은 61.6%, 극장은 35.9%에 불과합니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에는 OTT 비중이 42.7%, 극장 비중이 52.5%였던 것을 생각하면, 불과 5년 만에 지형이 완전히 뒤바뀐 것입니다. 넷플릭스와 같은 OTT 플랫폼의 부상은 결국 영상 소비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놓았습니다.

5. 영화관, 쉽게 문 닫을 수도 없다

문제는 영화관이 수익이 안 난다고 해서 곧장 폐관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대부분 15~20년 장기 임대 계약으로 부동산을 사용하기 때문에 운영 중단은 큰 손해로 이어집니다. 게다가 영화관은 설계 단계에서부터 입점을 염두에 둔 공간이기 때문에 구조 자체가 일반 상가와 다릅니다. 용도 변경도 어렵고, 리모델링조차 쉽지 않아 차라리 철거 후 재건축을 택하는 것이 더 나을 정도입니다.

6. 과거의 투자 신뢰는 이제 위험 요소로

한때 대형 마트나 영화관은 임차인 안정성과 장기 수익성을 기반으로 상업용 부동산 펀드의 핵심 자산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대형마트도, 영화관도 문을 닫고 있습니다. ‘극장이 들어온다’, ‘마트가 들어온다’는 문구에 기대어 상가 분양에 참여했던 투자자들은 이제 큰 손해를 보고 있으며, 특히 구분소유 형태로 투자한 경우는 더욱 위험합니다. 용도 전환이 불가능한 구조에서 임차인이 철수하면 투자금을 회수할 방법이 사실상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7. 강남도 예외는 아니다

많은 이들이 ‘강남은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강남 주요 지역에도 공실은 넘쳐납니다. 지하철 역세권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공실률이 80%를 넘는 곳도 적지 않으며, 강남 CGV 근처에도 빈 공간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잘 내려가지 않는 이유는 2021년 최고가 거래를 기준으로 억지로 유지되는 ‘기대 가격’ 때문입니다. 실질적인 수요나 거래는 거의 없는 상태입니다.

8. 분양가 거품과 공실 리스크의 이중고

최근 분양되는 오피스, 오피스텔, 상가 등 상업용 부동산의 경우 2020~2021년 고점에서 확보한 비싼 토지 가격이 반영되어 분양가가 터무니없이 높습니다. 하지만 그 비싼 가격만큼 공실 위험도 커지고 있습니다. 분양 이후 수년간 임차인을 구하지 못하는 지식산업센터 사례도 이미 많이 나와 있습니다.

9. 영화관, 문화시설로서의 혁신이 필요한 시점

그렇다고 해서 영화관이 완전히 사라질 산업은 아닙니다. 최근에는 전통적인 영화 상영 외에도 가수의 콘서트 영상이나, 강연 같은 새로운 콘텐츠로 관객을 끌어들이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가수 아이유, 임영웅의 공연 영상 상영처럼 대중문화와의 접목이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일부 기획사에서는 영화관을 강연장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10. 상업용 부동산, 이제는 옥석 가릴 때다

이제는 상업용 부동산 시장도 아파트처럼 ‘옥석 가리기’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입지나 브랜드, 분양 당시의 마케팅에 현혹되지 말고,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인지 꼼꼼히 따져봐야 합니다. 특히 지금처럼 시장이 흔들리는 시기에는 더더욱 철저한 분석과 냉철한 시선이 요구됩니다. 비싼 것일수록 더 빨리 무너질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멀티플렉스마저 구조조정에 들어가는 이 시점에 ‘믿을 만한 임차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